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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과 양영대군

깜상. 2014. 12. 3.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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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과 양영대군

 

     
    ※ 세종대왕과 양영대군 ※
    
    세종은 부하들을 휘몰아치는데 도가 튼 인물이었습니다.  
    아침 조회격인 새벽 4시 상참에서부터 과업 달성이  
    부진한 부하들을 닦달하였습니다.  
    밤낮으로 시달리다 못한 김종서의 경우 임금 곁에 있다가는  
    제명에 못살 것 같아, 스스로 궁궐을 떠나 삭풍이 몰아치는  
    북방을 개척하겠다고 손을 들고 나섰습니다.  
    
    정인지는 임금이 너무 독촉하고 소위 '갈궈대는' 바람에  
    모친 3연상을 핑계로 상소를 올리고 낙향하려 했으나, 임금은  
    법령까지 바꿔서 그를 다시 붙잡아다 오히려 일을 더 시켰습니다.  
    성군의 캐치프레이즈는 '신하가 고달파야 백성이 편안하다'였습니다.  
    어느날 양녕대군이 세종대왕의 어명을 받고 평안도를 유람하게 되어  
    세종은 형인 양녕대군에게 "제발 여색을 조심하라"고 당부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몰래 평안도 관찰사에게 명하기를  
    "만일 양녕대군이 기생을 가까이하거든 즉시 그 기생을 역마에 태워  
    서울로 올려 보내라"라고 하였습니다.  
    양녕은 세종과의 약속도 있고 하여 가는 곳 마다 기생의 수청을  
    물리치고 근신하였으나, 그가 평안북도 정주에 이르렀을 때  
    그만 양녕의 마음을 사로잡는 절세의 미인이 나타났습니다.  
    양녕은 그날로 그 절세의 미인고 하룻밤 동침하고 이 사실은 
    귀신도 모르리라 자신했습니다.  
    그리고는 동침하면서 하룻밤 풋사랑시를 한수 지어 그 여인게게 
    주었습니다. 
    그는 시를 읊기를 
     "아무리 달이 밝다하나 우리 두 사람의 베개를 들여다 보진 
    못할 것이다.  
    그런데 바람은 어이해서 신방을 가린 엷은 휘장을 걷어 올리는가" 
    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날 정주수령은  이 사실을 알고 기생을 역마에 태워서  
    서울로 올려 보냈습니다.  
    세종은 이 기생에게 명하기를 
     "너는 양녕대군이 읊은 시를 노래로 불러 익혀두라" 하였습니다.  
    양녕은 이런 사실도 모르고 유유히 서울로 돌아와 세종을 
    알현하였습니다.  
    양영대군 : 전하  잘 다녀 왔습니다. 
    세종 : 잘 다녀오셨습니까. 
    제가 신신당부한 말씀을 잘 지켜주셨는지요?  
    양녕 : 물론입니다. 어찌 어명을 어기겠습니까?  
    한 번도 여색을 가까이 한 일 없습니다.  
    세종 : 얼마나 수고가 많으셨습니까.  
    제가 형님의 노고를 덜어 드리고자 가무를 준비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여러  신하들과 함께 모인자리에서  
    기생을 불러내여 춤추고 노래 하게 했습니다. 
    양녕은 기생이 나와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누군지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가사를 들어보니 자신이 지은 시구가 아닌가.  
    "아무리 달이 밝다하나 우리 두 사람의 
    베개를 들여다 보진 못할 것이다.  
    그런데 바람은 어이해서 신방을 가린 엷은 휘장을 걷어 올리는가" 
    깜짝 놀란 양녕은 그 자리에서 땅에 엎드려 용서를 빌었습니다.  
    세종은 빙긋이 웃으며 뜰에 내려와 형님의 손을 잡고  
    위로하면서 그날 밤 그 기생을 양녕 댁에 보냈습니다.  
    아무리 부하를 휘몰아치고  계율이 엄한 임금님이지만 
    형제의 우애만큼은 변함이 없는  세종대왕 그래서 우리는 
    그를 위대한 인물로 평하고 화폐에까지 얼글을 색이지 않았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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