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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평대군

깜상. 2014. 12. 3.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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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대군은 1425년(세종 7)에 세종대왕과 소헌왕후 심씨의 제5남으로 태어나 1444년(세종 26)에 별세하였다. 평산신씨 증 좌의정 자수(自守)의 딸을 부인으로 맞아 영순군(永順君)을 두었다. 영순군은 남천군(南川君) · 청안군(淸安君) · 회원군(會原君)을 두었다. 그리하여 광평대군파는 현 종손 규명(揆明)에 이르기까지 19대를 내려오면서 무안대군(撫安大君) 방번(芳蕃)을 봉사하고 있다. 또한 선원(璿源)과 명조(名祖)의 명예를 받들어 긍지를 갖고 가문의 사행(事行 : 행실 거동 법도)인 `효우(孝友)'를 지키면서 560여 년을 이어 내려왔다. 항상 두려워하고 삼가하는 마음으로 대의를 쫓아 사행을 대대로 지켜옴으로써, 부모는 평안하고 자손은 영화를 누렸다.
임금을 섬기되 충성을 다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데 있어서는 공정하게 은혜를 베풀었다. 또한 효우를 실행하는 가운데 문학에 빛나고 공업이 쌓임으로써 일문이 화목하고 종당(宗黨)이 번성하여 명성이 온 나라에 떨치게 되었다.
광평대군의 아들 영순군의 묘소를 광주군 이을언리 수토산 현 서울 강남구 수서동 광수산(光秀山)에 모시고, 그 산 아래 영순군의 아들 남천군(南川君) · 청안군(淸安君) · 회원군(會原君) 3형제의 집을 지어 3궁(三宮)이라 일컬었으며, 이 때부터 이 마을을 `궁말'이라 불렀다. 이 곳이 광평대군손의 근원지가 되었으며 오늘에 이르렀다.
명조들을 살펴보면 선조 때 대학자 동은(쪏隱) 의건(義健 : 1533∼1621, 수곡서원 · 옥병서원에 배향)을 배출하였으며, 완산부원군(完山府院君) 욱(郁), 효종 때 우의정 완남부원군(完南府院君) 후원(厚源 : 1598∼1660), 문한대가(文翰大家 : 문필 · 문장 대가)인 이조참판을 역임한 정간공(正簡公) 선(選 : 1632∼1692), 숙종 때의 영의정 혜정공(惠定公) 유(濡 : 1645∼1721), 대사헌 · 대사간을 역임한 명신 완릉군(完陵君) 현록(顯祿), 우참찬을 역임한 봉조하(奉朝賀) 문정공(文貞公) 최중(最中 : 1715∼1784), 한성판윤 · 공조 · 형조 · 이조판서를 역임한 봉조하 문정공(文貞公) 목연(穆淵 : 1785∼1854), 국조 500년사에 불후의 거작 <고금석림(古今釋林)> 40권을 편저하고 승지 · 참판 · 대사간을 역임한 나은(懶隱) 의봉(義鳳 : 1733∼1801), <존주휘편(尊周彙編)> 20권을 편찬하고 대사간 · 관찰사를 역임한 의준(義駿), 그리고 헌종 때에 우의정을 역임한 문익공(文翼公) 지연(止淵 : 1777∼1841) 등이 있다.
또 한말의 포도 · 금위 · 어영대장과 형조판서를 역임한 양숙공(襄肅公) 경하(景夏 : 1811∼1891),
법부대신 범진(範晋 : 1853∼1910), 의병장 범승(範升), 해아밀사(海牙密使)로 유명한 위종(瑋鐘) 등 수많은 명인 · 명관을 배출하였으며, 조선조 500여 년 동안 전체 전주리씨 문과 등과자(登科者) 850명 중 115명의 등과자를 내었고, 조국광복 이후에도 초대 국무총리 범석(範奭 : 1900∼1972),
초대 서울시장 범승(範昇), 전 서울시장 원종(元鐘 : 1942∼ )을 비롯하여, 범준(範俊 : 1928∼ ), 규현(揆現 : 1922∼ ), 규성(揆成 : 1939∼ ), 광표(光杓 : 1930∼ ) 등 장관을 배출하고 정계 · 학계 · 재계에 수많은 저명인사를 배출하였으며, 자손 또한 번창하여 그 수가 5만명을 넘고 있으니, 이는 우리 가문의 사행인 효우를 잘 지켜 왔기 때문이라 하겠다.
또한 광평대군 묘역인 서울 강남구 수서동 산10번지 약 13만평 일원이 서울특별시 지방문화재 제48호로 지정되었다. 이는 한 지역내에 700여 기(基)나 되는 왕손의 묘소가 국장에 준하는 예우로 예장되어 있고, 그 묘역이 오랜 세월을 내려오면서도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으며 대를 이어 예장되어 있는 묘소에 묘비 · 신도비 등 석조물이 잘 보존된 것이 조선시대의 묘제도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각 묘소의 위치를 알 수 있도록 기록한 세장비(世葬碑)는 `참으로 귀중한 문화재'라고 문화재 지정문에서 밝히고 있다.
서울특별시는 1981년 2월 5일 광평대군 묘역 일원(강남구 수서동 산10번지) 125,237평을 지방유형문화재 제48호로 지정하였다.
서울특별시가 광평대군 묘역 일원을 유형문화재로 지정한 사유(문화재적 가치)를 약술하면, 다음과 같다.
▲ 첫째, 현대사회가 도시화됨으로써 점차 전통문화의 요람으로서의 성격을 잃어가고 있는 이때
광평대군을 비롯 그 자손들의 묘가 한 지역내에 7백여 기나 예장되고, 그 묘역을 오랜 세월 동안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장관을 이루어 보기 드문 묘역이라 높이 평가되는 바이며,
▲ 둘째, 동일 묘역 내에 대(代)를 달리하여 예장되고 또 이를 뒷받침해 주는 묘비와 신도비 등의
석조물들이 잘 보존된 예는 드문 것으로 조선시대의 묘제도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되며,
▲ 셋째, 광평대군묘와 동영부인묘 앞에 축조된 기단석의 양식과 장명등 · 옥개석의 물매가 급한
것은 특이한 점이라 하겠다.
▲ 넷째, 각 기에 부설된 문인석은 복식사(服飾史) 연구에, 상석 · 문인석 · 망주석 · 향로석 등은
그 나름대로 묘 석조물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되며,
▲ 다섯째, 김제군부인묘(광평대군의 자부)에 있는 부설 석조물의 배치가 측면으로 비낀 것은 이
묘의 서측에 시부묘가 자리잡은 까닭인 바 이 또한 묘 제도의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 여섯째, 특히 각 묘소의 위치를 알 수 있도록 기록한 세장비가 잘 보존되어 있음은 퍽 다행한
일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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