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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 각(새김)

깜상. 2025. 8. 20.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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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새김)은. 재료에 따라
여러가지 명칭으로 불려지고 있으며
몇가지 새김에 따라 비문을 대해
간략하게  알아봅니다
♥무덤 밖에 돌에 새긴 (비문)
*대나무 나무조각에 새긴(목간)(죽간)
*기와에 와당에 새긴 (와당문)
*작은돌(화유석)에 새긴것 (전각)
*옥에 붉은 글씨로 새긴 (맹서)
*쇠에 새기면 금문(종정문)
*거북등이나 동물뼈에 새기면 (갑골문)
*암벽에 새기면 (마애각석)
*동굴석벽에 새기면 (조상기)
*무덤 안에 새긴 돌을 (묘지명)
*한나라때 벽돌에 새긴것을 (한전)
*나무판에 새기면 (서각 )등등 있으며
(비)에 대해
짧은 지식으로 표현해 봅니다
★碑비는
묘에 시신을 하관할때
나무를 줄을 걸어
관을 내리기 위해 설치되었고
이 비목 걸이가
비석의 개석 아래에
(천공)둥글게 뚫어 사용되었다
비목이
비의 시작으로 보았고
이후 진시왕이 중국을 통일후
공적을 새겨 세운것이 각석이다
한나라 때 많은 비석들이 세워져
모양 문양 서체등이 크게 변화하였다

석탑
♥♥(碑)비는 구조는
★아래부분의 기석(基石)
(臺石대석 臺座대좌 碑座비좌)
★중간부분의 비신(碑身)
★머리부분의 비수(碑首)
개석(蓋石) 으로 이룬다
(碑)비신의 명칭은
정면을 비양(碑陽)이라하고
뒤면을 비음(碑陰)이라하며
좌우측면을 碑側(비측)이라한다
비의 내용에 따라
제왕의 것을 (능비) 공덕을 칭송한 (공덕비)
열녀를 칭송한 (열녀비) 불승의것을(탑비)
선정비 효자비 사적비 불망비 등등~
★大代宕昌公暉福寺碑
(대대탕창공휘복사비)
휘복사비(碑)는
북위(488년)새워졌다
비석의 높이 294cm이고 넓이 90 센치
두께 20센치 비문는 24행 44자씩
비액 아래는 지름13센치의
천공이 있다

♥)
♥괴산각연사통일대사탑비
보물 제1295호.
비는 귀부(龜趺)·비신(碑身)·
이수(螭首)를 모두 갖춘 완형의
탑비이다.  
귀부는
화강암제로, 여의주를 문 머리 조각이 뛰어나고
등에 6각의 귀갑문이 새겨져 있다.
귀부의 등 가운데에는
옆면을 안상(眼象)으로 새기고
윗면을 복련(覆蓮)으로 돌린 비신
받침[碑座]이 가로로 돌출되어 있다.
이수 또한 화강암제로,
아랫면에 2단의 낮은 받침과
앙련(仰蓮)을 돌려 새기고
4면에는 구름 속의 용틀임을
뛰어난 수법으로 새겼으며,
정상부에는 보주(寶珠)를 얹었다.
화강암제 비신은
앞면이 거의 마멸되어
위쪽 일부만 판독될 뿐이나
뒷면은 거의 판독된다.
용두화(龍頭化)된 귀부의 머리와
비신 받침, 이수 등의 조각이
신라 하대로부터
고려 초에 걸쳐
세워진 탑비의 일반적 양식을 따랐다.
비의 건립연대는 958년(광종 9)
8월로부터 960년(광종 11)
3월 사이로 추정된다.
비신 앞면의 마멸로 인해
지은 사람과 쓴 사람은 미상이다.
글씨는
해서로 신라 하대부터 고려
전기에 유행되던 구양순류의 서풍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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