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시절

가슴 아픈 역사속의 모습들

깜상. 2012. 4. 4.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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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아픈 역사속의 모습들

 

 
(제공 :우담 김병윤 장군 /서봉 이도필)

사진으로 보는 6.25전쟁

보내드리는 사진은 미국 메릴랜드 주에 있는 NARA(국립문서기록보관청,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5층 사진자료실에 보관된 'KOREAN WAR(한국전쟁)' 파일의 사진들이고 날짜와 장소는 사진 뒷면에 있는 영어 원문을 따랐다고 합니다.

사진 설명은 "오마이뉴스"의 박도 기자가 부친 것입니다. 박도 기자가  발표한 화보는 30개로 되어 있고 화보의 발표 순서가 사진 촬영 날자 순이 아니어서 당시 사정을 이해하는데 혼란이 생기는 흠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본인이 사진의 순서를 사진 촬영 일자 순으로  재편집하여 여러분에게  보내드립니다.

작년 6월에도 이 사진을 보내드렸는데 못 본 분들이 있고, 작년에 보았지만 다시 한번 보고 6.25 때를 되새기는 것도 뜻 깊은 일이라고 생각되어 15회에 걸쳐 보내드리겠습느다.

고 영 근 드림

 


6.25 이전의 주요 기록


▲ 1945. 9. 9. 미군이 서울에 입성하고 있다


▲ 1945. 9. 9. 미군들이 서울시민들의 환영 인파에 싸여 있다


▲ 1945. 9. 9. 조선총독이 총독부 홀에서 미군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항복문서에 서명하고 있다.


▲ 1945. 10. 12. 부산항 부두에서 일본군인들이 본국으로 떠나기 전 미군들에게 철저하게 검색을 당하고 있다



▲ 1946. 1. 16. 미소공동위원회에서 소련측 대표가 기조 연설을 하고 있다


▲ 1947. 5. 25. 개성 인근의 38선 미군 초소, 그때만 해도 요란한 철조망은 없었다


▲ 1948. 5. 8. 다가올 5. 10 총선거를 앞두고 경찰들이 선거 방해를 염려하여 죽창을 거둬들이고 있다


▲ 1948. 5. 10.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실시된 5. 10 총선거에 유권자들이 투표하고 있다


▲ 1948. 5. 10. 선거 방해 사범으로 체포된 5인, 맨 왼쪽 여인은 장택상을 암살하려다가 체포되었다고 기록돼 있다


▲ 1948. 5. 31. 국회 개원식 날 국회 의사당 앞에서 서북청년단들이 소련 철수를 주장하는 데모를 하고 있다


▲ 1949. 3. 제5차 소련 최고회의에 참석한 김일성(오른쪽 끝)과 박헌영(김일성 바로옆 안경쓴 사람)


▲ 1949. 9. 6. 미군사고문단이 국방경비대에서 기관총 훈련을 지도하고 있다.


▲ 1950. 6. 18. 6.25 한국전쟁 발발 일주일 전 의정부 북방 38 접경에서 미 국무장관 덜레스

(가운데) 일행이 38선 너머 북쪽을 살피고 있다(덜레스 오른쪽 신성모 국방장관).


▲ 1950. 6. 18. 미 국무장관 덜레스 일행이 38 접경 지대를 살피고 있다.

 

6.25-21950년 7월 5일부터 7월 26일까지


▲ 1950. 7. 5. 한 국군 용사의 무덤.


▲ 1950. 7. 5. 국군 헌병이 인민군을 붙잡는다.


▲ 1950. 7. 6. 전란으로 잿더미가 된 평택역.


▲ 1950. 7. 7. 기마대 행렬.



▲ 1950. 7. 7. 전란 중의 천안 시가지


▲ 1950. 7. 7. 미군이 포항으로 상륙하고 있다.


▲ 1950. 7. 7.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유엔파병안을 통과시키고 있다.


▲ 1950. 7. 10. 조치원 부근. 미군 트럭이 북한군 폭격기가 떨어뜨린 폭탄에 불타고 있다.


▲ 1950. 7. 16. 금강교 폭파 장면.


▲ 1950. 7. 21. 불타고 있는 대전 시가지.


▲ 1950. 7. 24. 경북 예천, 평화롭던 마을에 전차가 들어오면서 온 마을이 불바다가 된다.


▲ 1950. 7. 한미 수뇌부들이 환담하고 있다(왼쪽부터 조병옥 내무장관, 신성모 국방장관,

무초 주한 미대사, 임병직 외무장관, 워커 주한 미군 사령관).


▲ 1950. 7. 26. 맥아더 장군이 전선을 시찰하는 중, 종군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오른쪽 워커 장군.



오늘이 김일성 의 6.25 남침 한국전쟁 56 주년 입니다.

 

6.25  의 노래!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

 

 

 

내가 고른  한국전쟁 걸작 사진10장


    


원조 금순이?  6.25전쟁이 터지자 생활필수품을 한보따리 싸서 머리에 인체 아기를 업고 피난가는 이 젊은 새댁 사진은 전쟁 발발 직후 발행된 미국 LIFE잡지(1950년 7월 10일자)에 전면 크기로 실렸다. 얼마전 워싱턴 근교에 선 일일 골동품 시장에 갔다가 이 잡지를 발견하고 얼마나 반가웠던지... 이 새댁의 모습이 요즘 인기 절정 드라마 "굳세어라 금순아"의 주인공을 연상시키지 않습니까? 왼쪽에 삽입한 사진은 필자가 TV화면을 보고 촬영한 것.


               철모쓴 어린이들


   어른들은 왜 싸울까? 전투 중인 미군 아저씨들로부터 철모를 얻어쓴
두 꼬마 아가씨가  대포 소리가 너무 무서워 귀를 막고 있다. 난리통에
부모를 잃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유명한 사진기자 David D. Duncan이
찍은 보도 사진이다.


     


  이게  유토피아? 인천 상륙작전이 끝난 뒤 한 해병이 파괴된 인천 시내를 순찰하다가 어린 아이와 만난다.  치열한 전투에서 살아남은 행운아들이다. "유토피아"(이상향)이라는  다방 간판이 폐허가 된 거리 풍경과 아이러니칼한 대조를 이루고있다. (미국 국립 문서보관소 사진)


          고집불통 노인


       "피난을 가더라도 갓은 써야지"   미군 찦차에 실려 두 손자와 함께 피난 가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 있는 사진인데, 사진 설명을 보면, 중공군과 전투가 있으니 동네를 떠나달라는 미군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동네  이장인 이 할아버지가 피난 가기를 거부, 할수없이 찦차로 모시고 가는 길이라고 적혀있다. (미국 국립문서보관소 사진)


           방향이 다른 두 행렬

    군인은 북쪽으로, 피난민은 남쪽으로  6.25가 터진지 열흘이 지나서 미군은 처음으로 오산 죽미령에서 인민군과 싸웠으나 중과부적이었다. 계속 남하하는 북한 침략군을 저지하기 위해 북으로 행진하는 미군들과 그 정반대 방향으로 피난 가는 사람들의 표정이 무겁다. (미국 국립문서보관소 사진)

  
           아이와 탱크

      탱크도 무섭지 않은 아이들  하도 많이 봐서 이제는 탱크가 지나가도
마차가 지나는것 처럼 무관심한 어린이들.  어린 동생을 등에 업고 식량 구하러 간 엄마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미국 국립문서보관소 사진) 


        아줌마들
   
  아줌마는 강하다!  머리엔 무엇인가 잔뜩 이고 지팡이를 짚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는 두 아줌마...아마도 식량을 구해 가족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일 것이다. 길 옆에서는 미군들이 대포를 쏠 준비를 하고 있다.
(미국 국립문서보관소 사진)


           
                 엄마는 위대하다

엄마는 위대하다   피난길에 걸어가면서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엄마.  이 아기가 지금은 56세쯤
되었을 것이다. 어디선가  8순 할머니가 된 어머니를 잘 모시고 살고 있을 것이다.   (LIFE 잡지 사진)




         탱크와 피난민
 

   고향을 등지는 사람들  북진하는 탱크에 방해가 될세라 얌전히 길 한쪽에 한줄로 서서 걸어가는 피난민 대열. 자세히 보면 젊은 사람은 없고  노인들과 아녀자들 뿐이다. (미국 국립문서보관소 사진)


           초컬랫
 
헬로! 땡큐! 
미군으로부터 초컬랫을 받고있는 어린이.  처음 보는 것이라 과자인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미국 국립문서보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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