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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이씨(李氏)의 유래

깜상. 2014. 8. 27.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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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이씨(李氏)의 유래

시조 리한(李翰)은 신라시대에 사공 벼슬을 지냈으며, 태조 리성계(李成桂)의 21대조가 된다.
전주리씨가 조선 왕조를 창건하고 5백여년 동안 통치해 온 그 배경을 알기 위해서는 리성계의 고조부인 리안사(李安社)의 사적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리성계 자신은 함경도 출신 이지만 리안사는 원래 전주 지방의 호족이었다.
그는 당시 그 지방의 지주와 사이가 나빠 위해를 모면하기 위해 지금의 강원도 삼척으로 옮겨 갔다.
그런데 얼마 후 그 지주가 다시 삼척 지방으로 부임해 오는 바람에 그는 다시 가족을 거느리고 멀리 바다 건너 당시 여진족의 거주 지역인 간도 지방으로 가서 원나라의 다루가치가 되었다.
그 후 그의 아들 행리(行里), 행리 아들 춘(椿)도 대대로 두만강 부근 지역의 천호로서 원나라에 벼슬하였다.
또 춘의 아들이요, 성계의 아버지 자춘(子春)도 원나라의 관부가 있던 쌍성(雙城)의 천호를 지냈다.
이 무렵 고려 공민왕은 원나라의 국력이 쇠퇴해진 틈을 타서 북쪽 땅을 회복하기 위해 함경도 지방을 공략하게 되었다.
이때 자춘은 고려에 내응, 총관부를 함락시키는데 공을 세우고 대중대부 사복경이 되어 저택을 하사 받아 개경에 머물다가 왜구가 대거 침입하자 판군기감사로서 서강 병마사로 나갔다.
얼마 후 판장작감사로서 동북면 병마사가 되어 삭방도에서 죽었다.
리성계는 영흥에서 출생, 22세 때 아버지와 함께 고려에 귀순한 뒤 이듬해 류인우가 쌍성총관부를 공격할 때 내응하여 원나라 세력의 추방에 공을 세웠고, 아버지의 벼슬을 이어 금오위 상장군 동북면 상만호가 되었다.
그 후 반란을 일으킨 독로강 만호 박의(朴儀)를 토벌했고, 홍건적의 침입으로 개경이 함락되자 친병 2천을 거느리고 수도 탈환 작전에 참가, 맨 먼저 입성하여 전공을 세움 으로써 점차 중앙 정계에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그 뒤 계속해서 북쪽의 오랑캐와 남쪽의 왜구 토벌에 혁혁한 공을 세워 벼슬이 누진되자 신진 세력의 중심 인물로서 고려 말 중앙 정권의 중추 세력으로 등장, 구세력의 대표 최영과 맞서는 군벌을 이루어 벼슬이 수문하시중에 오른 후 구세력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 명나라의 철령위 설치 문제로 요동 정벌을 위해 우군 도통사가 되어 요동으로 향하다가 위화도에서 회군, 최영을 제거하고 우왕을 폐한 뒤 창왕을 세워 인사권과 군사권을 장악했다.
이어 창왕을 폐위, 공양왕을 추대하여 수문하시중, 영삼사사 등을 지내면서 구세력의 기반을 무너뜨린 다음 1392년 공양왕을 추방하고 새 왕조를 수립, 왕위에 올랐다.

 

전주리씨의 분파는

공칭 122파로 거의가 왕자인 대군과 군을 파조로 하고 있다. 전주리씨의 분파는 시대 구분에 따라 세 갈래로 나뉘어 지는데

하나는 시조 리한부터 목조 리안사까지의 사이에 갈라진 파요, 또 하나는 목조부터 태조의 형제까지 사이에 갈린 파이고, 다른 하나는 태조의 후손으로서 제왕은 <불감조기조(不敢祖其祖)>라 하여 조상 이지만 조상이라 칭할 수 없기 때문에 왕자인 대군과 군을 파조로 하는 파이다.


목조 이전의 상계에서 갈린 파로는 시조 리한의 15세손 단신(端信)을 파조로 하는 문하시중공파, 16세손 거를 파조로 하는 평장사공파, 18세손 영습(英襲)을 파조로 하는 주부동정공파와 이외에 목조의 방계로 윤경(允卿: 목조의 종손)을 파조로 하는 대호군공파, 리한의 22세손 귀을(歸乙)을 파조로 하는 문하평리공파 등이 있다.

목조 이후 태조 이전의 분파로는 목조의 아들인 안천(安川), 안원(安原), 안풍(安豊), 안창(安昌), 안흥(安興)의 5대군파, 익조의 아들인 함녕(咸寧), 함창(咸昌), 함원(咸原), 함천(咸川), 함릉(咸陵), 함양(咸陽), 함성(咸城)의 7대군파, 도조의 아들인 완창(完昌), 완원(完原), 완천(完川), 완성(完城)의 4대군파, 그리고 환조의 아들이자 태조의 형제인 완풍대군파와 의안대군파 등 18대군파가 있다.


태조의 후손으로 고종에 이르는 사이의 분파는

일반적으로 25대군파와 74군파, 도합 99파로 알려져 있으나 후손이 없거나 입양 관계로 두 파가 한 파로 되는 경우도 있어 실제로는 그 수가 훨씬 줄어들 것으로 생각된다.


전주리씨는 상신 22명, 문형 7명, 호당 10명, 청백리 8명, 공신 57명, 장신 34명, 문과 급제자 877명을 배출하여 단연 다른 씨족을 압도하고 있다.
전주리씨가 역사적으로 배출한 주요 인물들을 파별로 훑어보면 거의 정종, 태종, 세종, 성종 등 명군의 후손에서 압도적으로 많이 나왔다.

그 중 밀성군파에서 6명의 상신과 3대 대제학을 배출하고,

덕천군파에서 부자 대제학 등 3명의 대제학과 영의정 1명을 내어 밀성군파에 버금간다.
그 다음으로는 3명의 상신을 배출한 광평대군파,

상신 2명을 낸 선성군파,

상신 1명과 많은 문무관을 낸 효령대군파 등의 순이고,

무림군파와 덕흥대원군파는 무관집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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